1. 사회복지 역사 연구의 중요성
현재의 사회복지정책과 체계를 이해하고 미래에 더욱 업그레이드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복지역사연구의 중요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인간은 질병, 자연재해, 전쟁 등과 같은 고통을 겪는 문제를 감소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지속해 왔고 그 노력은 오늘날 인간들에게 각종제도에 의해 구체화되는데 대표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 제도와 종교제도 등으로 손꼽을 수 있다.
역사 연구를 통해서 이전의 사회복지 정책과 실천방식을 알게됨으로써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회복지의 전문성 향상과 추후 미래의 안정화된 사회복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과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사회복지역사의 연구의 중요성이 필수적인 것임을 인지할 수 있다.
2. 서구 사회복지의 역사
각 국가의 사회복지 발전은 내재적, 외재적, 매개적인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서구에서 사회복지발전은 다섯단계로 구분 지어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대체로 구빈법시대, 공동체 생활시대, 자선조직 협회시대, 사회보험 복지국가 발전과 재편 시대로 구분하며,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사회복지의 진화와 각 시대의 발전과정,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1) 공동체 생활 시대
산업화 이전에 단계의 고대사회나 중세사회는 씨족사회 또는 봉건사회의 생산방식이 기초가 되는 바탕의 사회였다.
이 시대의 사회복지는 왕에 의한 복지 또는 공동체 내의 사회 공헌 및 자선과의 상부상조 형태로 이루어졌다.
1) 왕의 의한 복지
중국, 인도, 이집트 등 오늘날에는 서양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이 고대국가는 서양을 포함해서 인류 사회의 근원이 된다고 말 할수 있다. 고대사회의 산업에 가장 기본이 되었던 농업과, 농민의 보호를 위해 왕은 이에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였다.
왕의 복지제도 중 일부는 군사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채택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전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됨과 동시에 군대를 강화시키고, 국민들의 충성을 얻기 위해 군인과 군인들의 가족들에게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등 왕에 의한 복지 시대에는 가난한 자와 환자를 보호하며, 노숙자를 구제시키는 일이 왕의 업무로 여겨졌었다.
2) 상부상조
서로서로 돕는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서로 바뀔 수도 있는 호혜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원조 방식이며, 상호이해화 협력을 통해 서로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의 상인 협회나 장의 단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로마시대에서 중요한 협회였던 제빵업자협회, 해운업자협회, 정육업자협회등과 같이 사교나 친목을 위한 비영리단체가 존재했다.
상인들이 여행 시 화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상인 길드와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조직하여 만든 직인 길드가 있었다. 이렇게 조직된 길드는 빈곤한 회원의 자녀에게 결혼비용 지원, 회원의 장례비와 유족의 생활비지원,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등을 사회복지와 관련된 기능으로 관련지어 볼 수 있으며 시대가 변화 함에 따라서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2) 구빈법 시대
1) 엘리자베스 구빈법
1601년도에 제정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시행된 여러 가지 제도들을 모아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완성시켰다. 그 밑바탕에는 영국의 (구빈법)이 토대가 되었는데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제정을 개척하는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348년 영국의 시민이 페스트로 인해 2/3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페스트는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며, 이 병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이다. 이 병으로 인해 영국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임금 또한 상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에드워드 3세는 1349년 노동자 칙령을 발표하여 토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들의 요청에 따라 구걸행위와 부랑을 예방하며, 농촌에 있는 노동자들을 토지에 묶어 두려는 목적을 가지고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걸인들에게 자선을 하지 못하게 제한을 두었다. 또한 노동력이 없는 빈민의 구제를 각 지방의 책무로 지게 하였으며, 부자들에게 구빈세를 징수하고 자활능력과 구직활동이 없는 빈민을 위한 보호시 서울 운영하는 등 모든 교구에 구빈감독관을 두어 지휘하고 단속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601년도 제정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국가가 빈민부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국가행정제도를 공식화하고 구빈세를 징수하였다.
2) 구빈법의 변화
사회와 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여러 차례의 변화하는 과정을 지나 1834년 신구빈법을 제정하였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제정 목적은 빈민구호에 있었지만, 이후 점차 빈민이 불안요소로 사회에 인식됨에 따라 빈민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악용되었으며, 공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과 같은 폐단이 생겼다. 1834년 신구빈법은 빈민 구호 비용을 줄이는데 기여하였는데 작업장 생활을 매우 엄격하게 규제하여 그 작업장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만들어 빈민이 구호를 요청하는 횟수를 감소시켰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에서는 구빈 대상을 빈곤아동(도제생활), 노동력이 없는 무능력 빈민, 작업장에서 강제노역하는 건강한 빈민 이처럼 3가지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중 원. 내외 구호대상은 무능한 빈민이었다.
1662년 정주법은 빈민이 자유롭게 이주를 할 수 없도록 막는 제도로 비판을 받았지만 부랑인들의 노동력을 묶어두고, 그 노동력을 사용하여 산업주의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3) 자선조직협회의 탄생과 임무
영국의 18세기~ 19세기 초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업화와 도시화가 발전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틀이 구축되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문제, 도시빈민이 대량으로 발생됨에 따라 빈곤 문제 등이 이슈 되었다.
재력이 있는 중산층의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도시빈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이 들의 활동영역이 제각각 분산되어 효과를 크게 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민간 사회복지기관의 한계점을 발견하였고, 분산되어 있는 활동을 보다 효과적이고 조직화하기 위해 탄생한 단체가 바로 자선조직협회이다.
자선조직협회들은 다른 자선단체와의 협력과 능률적인 원조 제공뿐만 아니라 빈민의 생활조건을 보완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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